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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1
2006-01-13 21:37:38
사무국
:: 공병우 자서전 ::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
※ 저작권 문제로 한글문화원에서는 머리말만 공개합니다. (한글문화원 사무국)





공병우 자서전 머리말 - 자서전을 쓰는 까닭 네 가지





나는 죽은 뒤에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게 될 것인지에 대해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이날까지 살아왔다. 살아 있는 동안 내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나아가 우리 나라와 겨레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살다가 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합리적인 서구 사람들처럼 나도 유서를 미리 써 놓았다. 그 내용에 재산 나누기에 관한 것은 별로 없다. 내 명의로 된 부동산 따위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유용하게 쓰거나 복지 사업을 위하여 사용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적어도 재산 분배 문제로 자식들을 번거롭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유서는 결코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 분배 명세서는 아니다.


나의 임종이 가까워진 것을 알게 된 여유 있는 상황이라면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하여 나의 눈이나 몸 속의 장기가 다른 사람 생명을 구하는 데 쓰도록 조치해 달라고 당부했다. 나의 숨이 끊어질 무렵에 차질이 없도록 의사 손에 맡겨 잘 처리해 달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내 몸이 변질되기 전에 갈기갈기 찢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남은 부분은 화장을 하여 재를 강물에 뿌려 달라고 자식들에게도 당부하였다.


나에 대한 평가는 죽은 다음에 하느님으로부터 가장 정확하게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자기 생애를 미주알고주알 다 드러내 놓고 조명해 가며 자기 미화를 꾀하려는 듯한 어떠한 시도도 나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기에 나는 자서전이나 회고록 따위와는 사실 인연이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나이 80이 넘은 지금 내가 걸어온 길을 더듬어 보기로 한 데에는 크게 네 가지 뜻이 숨어 있다.


첫째는,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한글을 500여 년 동안 줄곧 천대만 해온 우리 민족이 이제부터라도 한글만 쓰면서 한글 기계화의 입력과 출력을 세벌식으로 꾀하여야 겨레의 문화를 빠른 속도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민족 앞에 유언처럼 선포하고 싶은 것이요,


둘째는, 나에 관한 기사가 책 또는 잡지나 신문에 가끔 나온 것을 볼 때마다 사실과 다른 점이 더러 눈에 띄었기에 잘못된 자료가 진실로 둔갑할 우려가 있어, 내 스스로가 진실을 기록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보기를 들면 "한글 타자기의 시조 공 박사는..."라고 운운한 글을 보게 되는데, 이는 잘못된 글이다. 나보다 먼저 한글 타자기를 만든 분들이 있었다. 내가 고성능 한글 타자기를 최초로 발명했다고 하면 말이 되지만, 고성능이라는 수식어를 붙이지 않으면 사실과 다르다. 그래서 부정확하게 알려져 있는 과학적 사실을 정확히 밝히고 싶은 것이요,


셋째는, 나는 지금까지 싸움을 많이 했는데 왜 싸웠는지 그 이유를 밝히고 싶어서이다. 내가 가장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것이 과학기술처에서 정한 비과학적인 표준 자판을 폐지하라는 한글 기계의 글자판 싸움이다. 이 싸움을 근 20년 가까이 해 오면서 적잖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다. "승산도 없는데 왜 싸우느냐?" "그렇게나 오래 싸웠는데 아무 소용이 없지 않느냐?" 등의 이야기를 특히 많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꼭 이기려고 싸운 것은 결코 아니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가 한글 기계화 정책을 잘못해서 나라를 망치는 것을 보고 그냥 둘 수가 없어서 싸운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역사에 한 줄 기록이라도 올바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서 싸운 것뿐이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한글을 아직도 천대하고 있는 남한 동포들에게 한글 기계화에 관한 올바른 과학을 어찌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이러한 내 생각을 조금이라도 밝혔으면 함이요,


넷째는, 내가 안과 의사로서, 세벌식 한글 타자기 발명가로서, 한글쓰기 소프트웨어를 직결 방식으로 개발한 자로서, 그리고 세벌식 자판 통일을 완성한 연구가로 살아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협조를 받았고, 6.25 난리 때는 죽을 고비에서도 목숨을 건질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와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 많은 은인들에게 내가 걸어온 자초지종을 알려 드리는 동시에 감사의 뜻을 올리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흔히 말하는 사교술이나 처세술을 몰라서 가족들로부터 가끔 핀잔을 받으며 살아왔다. 그러나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는 신조로 살아왔다. 그리고 민족 문화의 빠른 발전을 위해 한글 전용과 한글 과학화 연구에 나의 정열과 시간 돈을 아낌없이 섰다. 한편,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 장애자나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봉사를 내 형편 닿는 대로 했다. 이러한 것은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내가 이렇게 민족 문화와 복지 사업에 다소나마 일하게 된 직접적인 뿌리는 내 할아버지께서 "적선을 한 사람은 난리가 나도 산다"라는 어렸을 때부터 들려주신 교육적인 말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 할아버지께서 "평소에 남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은 전쟁과 같은 살아남기 힘든 때를 만나도 죽음을 면할 수 있다"는 말씀을 귀가 아플 정도로 들려 주셨다. 나는 그 덕분으로 6.25 때, 정 판사 위조 지폐 사건으로 공산 치하의 감옥 속에서도 사형을 면하고 살아 남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그 교육적인 의도가 담겼던 말씀이, 세상을 약삭빠르고 악하게 살아가려고 하는 사교술보다 훨씬 값진 것이란 점을 요즘의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도, 이 책의 발간 취지에 섞여 있다.


나의 걸어온 길을 더듬어,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어떤 가식이나 주저함이 없이 기록하여 세상에 밝기기로 작정한 것이다. 내가 지난날 체험한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나의 고백이,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여러 가지 자료를 제대로 모아 두지 않은 탓과 내 나이 여든이 넘어 기억력이 쇠퇴한 탓에 본의 아니게 중요한 부분이 빠졌을 수도 있고, 잘못 적은 부분이 있을 듯해 염려스럽다. 뒤늦게라도 그런 부분이 발견되면 고칠 수 있기를 바란다. 만약 내가 죽은 뒤에라도 잘못된 부분은 바로 고쳐지기를 바란다.


끝으로, 내가 내 식대로 살아오게끔 은총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내가 내 식대로 살아오는 동안, 많은 사랑과 도움을 주신 조부모님과 은사님들, 내 아내, 그리고 내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또 이 책을 내기까지 직접, 간접으로 도와 주신 여러 사람들과 특히 원고 정리에서 편집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 주면서 거들어 주신 "미주 한글 문화원" 원장 신 태민 선생과 "한글 기계화 추진회" 회장 송 현 선생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1989. 8. 15.
공 병우
서울 종로구 와룡동 95번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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