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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문화원 - 송 현 원장 자료실 ▨ ▨ 한글문화원 ▨

 

 

 


4531
2006-12-02 11:44:58
송 현
과학기술처와 글자판 투쟁 이야기 (1. 2)


{자료}

송현과 과학기술처의 글자판 싸움(1,  2탄)
---어느 관리와의 다툼


송현(시인. 한글기계화추진회장)


저는 함석헌 선생님과 공병우 박사를 존경합니다. 함 선생님을 한국의 간디라고 생각하고, 공 박사를 제2의 세종대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분의 공통점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고향이 북쪽이라는 점, 둘 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란 점,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공통점은, 두 분 다 신앙이나 신념 때문에 싸우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이 두 분은 이날까지 밤낮 싸워 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계속해서 싸울 것입니다. 두 분 다 한없이 마음이 어질 뿐 아니라 또 부끄럼도 잘 타는 온순한 분입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들까지 시끄럽게 싸우는데도 하늘이 아직 잡아가지 않는 것은, 아마 이분들의 싸움이 신념이나 신앙의 싸움이어서 그리 밉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저는 함 선생님으로부터 세례를 받았고, 공 박사로부터 공병우한글기계화연구소 부소장 자리를 얻었습니다. 저는 남들과 싸우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분을 존경하고 여러 해 따라다니다가 보니 저도 모르게 물이 들어서, 어느새 싸우는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요즈음 제가 싸운 싸움은 대강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체신부 장관에게 전보에서 풀어 쓰기를 하는 것은 한글의 우수한 과학성을 파괴하는 어리석은 짓이며, 또 2벌식 자판으로 된 텔레타이프를 쓰는 것은 나라와 겨레에 너무나 큰 손실이기 때문에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고 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로 모교인 동아대학교 신문의 주간에게 가로쓰기 인쇄 방식을 버리고 세로쓰기 인쇄 방식으로 하는 것은 시대에 아주 뒤떨어진 어리석은 일이며, 지금까지 선배 교수들이 쌓아놓은 위대한 전통에 먹칠을 하는 한심한 처사라고 한 것입니다. 셋째로 한글학회 주간에게 한글학회가 한글 기계화에 앞장을 서 오다가, 갑자기 한글 새 소식의 조판을 낡은 활자 방식으로 한 것은, 한글 기계화 발전을 가로막고, 한글 전용을 방해하는 처사라고 한 것입니다. 넷째로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김 아무개 교수가 <국한문 혼용에 대한 과학적인 고찰>이란 논문을 《고대 신문》에다 발표하였는데, 한글 기계화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한문자에 중독이 된 탓으로 너무나 무책임한 소리를 한 엉터리 논문이어서, 그에게 반론을 제기한 것입니다. 다섯째로 고려대학교 인문대학의 김 아무개 교수가 타자기와 식자 조판기와의 구별도 하지 못하고서, 타자가 자형에 대해서 무책임한 헛소리를 하는 것을 보고, 다시는 그런 무식한 소리를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여섯째로 한글학회가 아직도 2벌식 풀어 쓰기 환상에 사로잡혀, 과학기술연구소 구지회 박사와 몇몇이 4벌식 자판으로 개발한 잉크 분사식 컴퓨터가 2벌식 자판으로 만들어졌다고 허위 보도를 한 것은 한글 전용을 방해하는 처사라고 한 것이며 그밖에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 한창 신나게 싸우고 있는 싸움은 과학기술처 장관과의 한글 타자기 기본 글자판 통일에 대한 싸움입니다.

저는 부산에서 10년 가까이 시 공부를 하여도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지 못한 그 소박한 이유로 풀이 죽어 살다가, 마침내 등단을 하여야 시인 행세를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 어리석은 욕심 때문에 대학원 공부도 중간에서 팽개치고, 삭발을 한 채로 서울로 올라오고 말았습니다.

몹시도 춥던 그해 겨울에, 한산섬의 「사람의 집」에 사는 아동문학가 주중식씨가 우리 집으로 놀러왔습니다. 마침 저는 무슨 원고를 정서하려던 참이었는데, 쓰기가 귀찮아서 엄두를 내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때였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그는 대뜸 깨끗이 정서를 해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는 가방 속에서 자그마한 기계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공병우 한글속도타자기였습니다. 그는 제가 너댓 시간에 걸쳐서 할 일을 한 시간도 채 못되어서 깨끗하게 끝을 내었습니다. 저는 신기해서 한동안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렇게 편리한 문명의 이기를 모르고, 손으로 글을 쓰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살았다는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한심하게 여겨졌습니다. 저는 당장 유판사라는 가게에 전화를 하여서 월부로 타자기를 샀습니다. 그때 산 그 공병우 속도타자기 때문에 저는 한글 기계화 일로 들어서서 이제는 어느덧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 가나 오나 싸우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타자기를 제 애인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타자기가 없으면 이젠 하루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보니, 이렇게 좋은 문명의 이기를 혼자만 쓰기가 너무나 안타까와서, 소설가 정을병, 김태영, 신석상씨들과 같이 문인들에게도 이런 좋은 문명의 이기를 보급하자는 목적에서, 문장용타자기연구회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발기회 자리에서 제가 회장으로 뽑히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교직 생활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예」 할 때에 「예」라고, 「아니오」 할 때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부끄럼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언젠가는 〈고래 사냥〉이란 대중가요가 나왔는데, 저는 그 노래의 가사가 하도 맘에 들어서, 제가 가르치는 전교생에게 특강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특강이 마악 끝났을 때에 방송 금지곡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언젠가는 신동엽의 〈금강〉에 대해서 반마다 특강을 하였는데, 그것이 마악 끝났을 때에 그 책이 판매 금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런 풍토에서 도무지 학교의 선생으로서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학생들은 제 말에 귀를 쫑긋해 하고 눈알을 반짝였습니다.

그 무렵에 제가 쓴 〈전화와 타자기〉라는 수필이 인연이 되어 공 박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일흔이 넘은 할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공안과 병원에서 번 막대한 돈을 다 털어서 타자기를 위해서 돈을 쓰는지를 처음에는 몰랐는데, 알고 보니 7년째 타자기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타자기 전쟁이란 다름이 아니라, 1969년에 과학기술처가 만든 이른바 표준판 타자기와 공병우판 타자기와의 글자판 싸움입니다. 다시 말하면 3벌식(공병우식:자음+모음+받침)과 4벌식(표준식:자음+모음+모음+받침)과의 싸움입니다. 3벌식이 더 과학적이며, 우수하기 때문에 4벌식을 버리고 3벌식을 표준판으로 정해야 한다고 공 박사는 주장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공 박사가 자기 것을 자기가 좋다고 하기에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손수 타자기를 쳐 보고 또 기계화에 대해서 공부를 조금 하고 나니 과연 공 박사 주장이 옳구나 하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표준 자판이 잘못된 것 때문에 한글 기계화가 마비되고, 한글 기계화가 마비되니까 이틈에 한문자 기계화가 점점 판을 치게 되고, 한문자 기계화가 판을 치게 되니까 현실적으로는 한문자를 섞어 쓰는 것이 더욱 편리하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일부 한심한 사람들이 은밀히 문화의 종주국으로 생각하는■■그러나 한국과 같이 문명화된 글자 대신에 원시 문자밖에 없는■■일본에서 그런다는 이유로 초등학교에서까지도 한문자를 가르치자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이 당연하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한글전용이 더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 한글 타자기 글자판 혼란에도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한글 타자기 기본 글자판을 과학기술처에서 왜 잘못 정했을까 하는 것을 조사하고 연구한 끝에, 화각기술처에서 타자기의 「타」자도 잘 모르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들을 모아 놓고, 넉 달 만에 공청회 한 번 열지도 않고 날치기로 만들어서 발표하였다는 데에 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다가 1976년 6월 어느날에 공 박사로부터 같이 한글 기계화를 위해서 일해 볼 생각은 없는가 하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에 저는 이것저것을 생각하느라고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학교를 그만두고 연구소로 직장을 옮기는 것을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연구소는 학교만큼 안정되지 못한 직장이란 이유로 모두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한글 기계화를 위해서 제가 할 일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표준 자판을 과학적으로 고치자고 싸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제 몸을 불사른다면 제가 사랑하는 제자들을 버리고 교단을 떠나는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공 박사의 제의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에 제가 근무하던 서라벌고등학교를 떠나 공병우한글기계화연구소 부소장이란 중책을 맡아서 직장을 옮겼습니다.
연구소에 와서 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몇만 가지 자료를 뒤지고 연구한 끝에, 한글 기계화의 문제점과 방향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로 통일하여야 할 한글 표준판이 통일은커녕 혼란만 조성하고 너무나 비과학적이고, 또 나라를 망치는 엉터리 글자판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1977년 2월 22일 날짜로 대통령에게 한글 기계 기본 글자판을 3벌식으로 통일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를 보냈습니다(이 건의서는 드디어 과학기술처에 도전장을 보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표준판은 공병우 판보다, 첫째로 속도에서 40퍼센트쯤이 뒤떨어지고, 둘째로 배우기에 시간이 70퍼센트쯤이 더 많이 걸리고, 셋째로 한영 겸용 타자기가 개발될 수가 없고, 넷째로 타자 능률이 삼분의 일밖에 되지 않고, 다섯째로 모든 한글 기계 사이의 연동이 불가능하고, 여섯째로 장님들이 거의 사용할 수 없고, 일곱째로 글자판을 완전히 통일할 수 없기 때문에 하루빨리 4벌식을 버리고 능률적이고 과학적인 3벌식으로 통일해 달라는 내용의 건의서였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이 없어서 1977년 6월 27일 날짜로 다시 대통령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3개월이 지나도록 아무 회신이 없으니까 무슨 까닭인지 궁금해서 보낸 것입니다. 본인의 건의가 타당하지 않으면 타당하지 않다고, 가치가 없으면 가치가 없다고 분명히 답변해 주면 고맙겠다는 내용의 편지에 처음 것과 같은 내용의 건의서를 덧붙여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1977년 6월 27일 날짜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답장이 뜻밖에도 과학기술처로부터 왔습니다.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 위원들에 의해서 연구되고, 1969년 7월 4일 국무회의에   보고 확정되어, 1969년 7월 28일자 총리 훈령 81호로 공포되었으며, 현재 표준 자판  에 의한 한글 기계화는 순조로이 진행되고 있으니 귀하의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중간 생략)
  귀하의 청원서에서 감정어린 언사(예 : 일부 몰지각한 관리들, 주무 관청의 무사 안일주의적인 사고 방식■)를 사용하고 있는 바, 이는 국민 총화로 추진하는 유신 과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이후 이러한 비건설적인 청원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과학기술처 장관

한글 기계화 글자판의 혼란으로 한글 기계화 발전이 마비되고, 정부기관조차도 글자판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을 돌보지 않고 한글 기계화가 순조로이 되고 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자기들의 잘못을 숨기면서, 도리어 저한테 비건설적인 청원은 삼가라는 은근히 위협적인 투로 답장을 보내온 것을 보고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처는 이날까지 이렇게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태도로 전문가들의 의견을 묵살해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다들 더 싸울 생각을 못하고 흐지부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단히 싸울 생각을 못하고 흐지부지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단히 싸울 각오를 하고 11가지 구체적인 질문서를 1977년 7월 4일 날짜로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보냈습니다.

■본인의 주장이 어떻게, 어떤 이유로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지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무책임하게 대답한 것과 국가 흥망을 좌우하는 중대한 한글 기계화를 무성의하게 답변한 것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질문하는 다음 11가지 문제에 대한 정당한 해명이 없이는 과학기술처 답변의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첫째, 표준판이 나온 지 8년이 지나도록 체신부에서는 2벌식 모아 쓰기와 2벌식 풀어 쓰기 텔레타이프를 쓰고, 내무부에서는 3벌식으로 쓰고 군대에서는 2벌식으로 쓰고, 일반 통신사, 신문사, 은행 같은 곳에서는 3벌식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부 기관 자체에서도 서로 연동이 되지 않고, 글자판 통일이 되지 않는 이런 한심한 일이 어디 있으며, 이것이 8년 동안이나 방치되고 있는데도 글자판이 통일되었다고 보십니까?

둘째, 표준 자판이 제정될 때 장담한 한영 겸용 타자기를 8년이 지났는데 왜 개발하지 못합니까?

셋째, 공병우 자판보다 40퍼센트 이상이나 속도가 느리고, 사무 능률이 반도 되지 않는 표준 자판을 쓰는 것은 국가적으로 손실이라는 본인 주장이 타당한지 아닌지 조사하여 볼 생각은 없습니까?
넷째, 글자를 한자 찍고 일일이 사이 띄우개를 눌러야 하는, 속도가 23퍼센트나 느린 엉터리 텔레타이프를 군대에서 쓰게 하는 것이 군대 발전이나 안보상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섯째, 한 가지로 글자판을 통일할 것을 두 가지로 정한 것이 통일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섯째, 표준판 교육 시간은 공병우 판에 걸리는 교육 시간의 두 배인데 그래도 표준판 교육을 시키는 것이 국가적으로 이익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곱째, 각 신문사ㆍ통신사 같은 곳에서 표준판은 도저히 쓸 수 없다고 표준판 텔레타이프를 쓰지 않고 공병우식을 쓰는데,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 조사해 볼 생각은 없습니까?

여덟째, 과학이 발전할수록 나날이 새로운 것이 나오는데, 가령 표준판을 만들 당시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여도 8년 동안 써본 결과 비과학적인 모순이 많이 드러났다면 고치는 것이 현명합니까, 아니면 한번 정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 현명합니까?
(중간 생략)

만약 본인의 질문에 대해서 전번처럼 과학적인 근거도 없는 무성의한 회신을 준다면 이는 제 개인에 관계되는 문제가 아니고, 국가와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중대한 문제이므로 이로 말미암아 앞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그 책임은 과학기술처에 있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위와 같은 질문서를 보냈더니 과학기술처 장관은 저에게 1977년 7월 11일에 과학기술처로 출두하라는 출두 명령서를 보내왔습니다.

저는 평소에 내가 아끼는 공병우 속도 타자기와 몇 가지 자료를 준비해서 과학기술처로 갔습니다. 과학기술처의 개발관실에서 다시 심의관실로 안내되었습니다. 나와 대담하게 된 사람은, 8년 전에 세계 역사에서 가장 엉터리 타자기이며, 국군의 전력을 떨어뜨리고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크게 희생시킨 비능률적인 기계라고 할 수도 있을 표준판타자기를 만든 장본인 황해룡씨였습니다. 이날 대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앞 부분의 인사말은 생략함)

황해룡 : 송 선생은 건의서에서 4개월 만에 날치기로 표준 자판을 만들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날치기로 만들었단 말입니까? 국무회의를 거치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발표할 정도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정한 것을, 어디다 근거를 두고 날치기라고 무책임한 소리를 합니까?
송현 : 어디서 고함을 지르십니까? 여기 누구 귀먹은 사람이 있어요? 어디다 대고 부하 직원에게 꾸지람하듯이 고함을 지르고 야단이십니까? 날치기로 한 증거를 얼마든지 댈 수 있어요. 《동아일보》라면 공신력이 높은 신문인데, 이 《동아일보》기사에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쉬쉬하며 4벌식으로 정한 졸속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지 않습니까?
황해룡 : 《동아일보》가 우라나라 전체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입니까?
송현 : 전체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동아일보》라면 우리나라 신문으로서는 가장 공신력 높은 신문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황해룡 : 그렇다고 그것이 전체의 여론입니까?
송현 : 그러면 다른 자료를 더 보여 드리지요. 《한국일보》,《조선일보》,《영남일보》,《타이프 잡지》, 그리고 이것은 합동통신 자료입니다. 이렇게 여러 매스컴에서 입을 모아 표준 자판이 졸속한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는데, 이것이 일부 여론이라고 생각합니까?
황해룡 : 송 선생이 그 당시 참여하지도, 보지도 않고, 신문들이 쓴 말만 믿고 날치기로 속단을 할 수 있어요?
송현 : 직접 보지도 않고 참여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는 말할 자격도 없다는 식이군요.
황해룡 : 직접 보지도 듣지도 않은 사람이 어찌 그 당시에 한 일을 날치기라고 무책임하게 표현할 수 있단 말입니까?
송현 : 참 어처구니 없는 말씀을 하시는군요. 가령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였다고 할 때, 신라가 삼국 통일을 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라야만 이야기할 수 있단 말입니까?
황해룡:■■.
송현 : 마찬가지로 제가 직접 표준판을 정할 때 보고 듣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에 나온 신빙성 있는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말하는데, 무엇이 잘못입니까? 영문 타자기는 수백년씩이나 연구를 계속해도, 만족하지 않고 지금도 개량 발전시키려고 노력을 하고 국내에서도 수십년씩 일생을 두고 연구하여 개량했는데, 4개월 만에 공청회도 한 번 열지 않고 만든 것이 날치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중간 생략)
황해룡 : 건의서에「몰지각한」,「무사 안일주의」란 말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송현 : 표준판을 잘못 제정한 사람들과, 그후에 표준판을 고쳐야 한다고 전문가들이 수차에 걸쳐 건의서와 진정서를 보냈지만 이를 받아들여서 과학적으로 고치지 않고, 묵살하거나 또 엉뚱하게 답변하고 얼버무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황해룡 : 표준판이 국무회의를 거치고 국무총리 훈령으로 발표가 되기 전에, 대통령의 허가를 얻어서 발표가 된 것으로, 모든 행정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으며, 또 대통령도 표준판 제정에 관계가 되는데, 그렇다면 대통령도 「몰지각」하고「무사 안일주의적인」사람입니까? 어찌 송 선생이 경솔하게 감히 일국의 국가 원수를 몰지각하다고 모독하십니까?
송현 : 황 조정관님은 독해력이 아주 형편없으시군요. 그 문장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대통령을 모독한 말이 어디에 있는지, 그런 쉬운 문장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시면서, 마치 잘못이 내게 있는 양 뒤집어 씌우려고 하시니 참 어처구니가 없군요.
황해룡 : 표준화 과업의 최종 결정은 대통령이 한 것인데, 기계화에 관계되는 사람이 몰지각하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대통령을 모독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요.
송현 : 남의 글을 똑똑이 읽고 말하시오.
(중간생략)
황해룡 : 송 선생은 마치 국민 전체의 여론이나 되는 것처럼, 표준화 과업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하는데, 그런 주장은 공병우씨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송현 : 지금까지 제가 건의서에서 주장한 것이나 글로 주장한 것의 바탕은 여러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와, 표준판을 정할 당시에 참여했던 사람과 그 당시의 사정을 잘 아는 분들의 주장과 그 당시 글로 발표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황해룡 : 여러 전문가들이란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지 구체적으로 이름을 대시오.
송현 : 얼마든지 댈 수 있지요. 예를 들면 주요한 박사, 공병우 박사, 타자 교육 권위자 임종철 선생님, 강태빈 선생님■ 얼마든지 댈 수 있지요.
황해룡 : 그런 사람들은 공병우씨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단 말이오.
송현 : 아니, 아까 제시한 여러 매스컴의 주장과 그리고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이 한결같이 표준판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데도, 한사코 일부의 주장이라고만 고집할 수 있어요?
황해룡 : 그런 소리는 밤낮 공병우씨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만 하는 말이오.
송현 : 과학적인 근거도 없이, 무책임하게 말할 것이 아니라, 저의 주장이나 공병우 박사 주위의 사람들의 주장이 어떻게 틀렸다고 입증할 만한 증거 자료를 내 놓으시오.
황해룡:■■.
(중간 생략)
황해룡 : 건의서에 허위 보고서를 발표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한 증거 자료를 댈 수 있어요?
송현 : 얼마든지 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선 허위란 말의 뜻부터 못박고 지나갑시다. 허위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과 다른 걸 말하지요. 사실과 다른 것은 허위이고, 사실과 같은 것은 진실이란 것을 인정하시지요?
황해룡 : (고개를 끄덕인다).
송현 : 그렇다면 됐습니다. 허위 보고서를 발표하였다는 증거가 여기 있습니다.「표준판 제정에 관한 과학기술처의 발표는 사실과 엄청나게 다르다」라는 논문입니다. 사실과 엄청나게 다르니까 허위라도 엄청나게 허위란 말이 되지요.
황해룡 : 그 사람 혼자 말만 믿고 허위라고 단정합니까?
송현 : 이 사람 혼자가 아닙니다. 이밖에도 여러 사람들의 연구 발표가 있습니다.
황해룡 : 그런 사람들도 다들 공병우씨 주위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한데, 그런 자료를 바탕으로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서를 냈다고 할 수 있어요?
송현 : 이밖에도 얼마든지 증거 자료를 댈 수 있는데, 왜 그런 억지 소리를 하십니까?
(중간 생략)
송현 : 황 조정관님은 마치 한글 기계화 과업이 순조롭게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계신데, 현재 얼마나 글자판이 혼란되어 있으며, 한글 기계화가 마비되어 있는 줄 아십니까? 40퍼센트나 느린 타자기를 표준판이라고 정하여 찍게 하고, 타자기 치는 사람이 텔레타이프를 칠 수도 없어 속도가 23퍼센트나 느린 텔레타이프를 치게 하고 또 정부 기관에서도 글자판 통일이 되지 않고 있는 실정을 외면하면서, 한글 기계화가 아주 잘 된다고 하시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세상에 또 어디에 있습니까? 군대에서 쓰는 텔레타이프만 해도 통신 속도가 23퍼센트나 느리고, 타자수가 칠 수 없는 텔레타이프를 쓰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세계 역사에 유례를 볼 수 없는 엉터리 텔레타이프를 쓰게 하는 것이, 기계화가 순조롭게 되는 것입니까? 칼 빌딩에서 세미나를 하려고 하던 것을 기억하지요.
황해룡 : 네
송현 : 그때, 황 조정관님의 입으로 공 박사님께 한 말을 기억하지요. 『박사님, 표준판이 잘못된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두고 이렇게 요란하게 세미나를 한다면 선거에 지장이 있으니 곤란합니다. 잘못을 우리가 인정하니, 선거 끝나면 자진해서 이를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좀 참아 주십시오』하고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황해룡 : 무슨 증거가 있어요. 그때 녹음이라도 하였단 말입니까?
송현 :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요. 지금 당장 가서 증거를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고도 한글 표준화 과업이 잘된다고 하십니까?
황해룡 : ■■.
(중간 생략)
송현 : 지금 이 타자기가 공병웅 타자기입니다. 이 타자기를 제가 치면서, 표준판이 얼마나 엉터리인가 직접 증거를 대지요.
황해룡 : 그만두시오. 공병우씨 주위 사람들이 밤낮하는 소리인데 그만두시오. 나는 그런 것 볼 만큼 한가하지 않소.
송현 : 실제로 과학적으로 입증을 하겠다는데도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황해룡 : 일단 국무총리 훈령으로 발표를 하여서 정한 것을 몇 사람들이 자기 주장과 맞지 않는다고 반대를 하는 것이 옳단 말입니까? 표준판을 전문가들이 연구해서 정했다는 것을 알아야지요.
송현 : 3벌식보다 엄청나게 못한 엉터리인데 전문가들이 정한 것입니까? 일단 국무회의를 거쳐 국무총리 훈령으로 발표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인데, 말도 되지 않습니다. 국무총리 훈령 81호가 아니라 801호라도, 국무회의를 100번을 하고 정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 된 것이라고 판명이 되면 고치는 것이 현명하고 과학적인 일이 아닙니까?
황해룡 : 표준판을 한번 고치는 것이 송 선생 말대로 그렇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도 아니고 또 일부 사람들 주장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그래 빈번히 고쳐야 한단 말입니까?
송현 : 하루아침이나 이틀이건간에, 잘못하면 고쳐야지요. 그리고 일부 사람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의 주장이라도 그것이 과학적이라면 그대로 따르는 것이 당연하지 않아요?
황해룡 : 당신 같은 사람하고 더 이상 다툴 시간이 없습니다.
송현 : 나도 당신 같은 사람하고 더 이상 따질 시간이 없습니다. 장관님 이름으로 출두하라고 공문까지 보냈기에, 이제사 과학기술처가 잘못을 뉘우치고 표준말을 고치려고, 나의 의견을 좀 들어 보려고 오라고 한 줄 알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나왔는데, 나오고 보니 적반하장격으로 내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책임 추궁하는 식으로 사람을 겁을 주려고 하니,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황해룡 :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요.
송현 : 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저러나 제가 장관님께 보낸 질문서의 11가지 물음에 대한 답변을 해 주어야지요.
황해룡 : 그런 것 대답할 만한 시간이 남아 돌아가지 않습니다.
송현 : 그럼, 대답해 주지 않는단 뜻인가요?
황해룡 : 우리는 그런 것 대답할 만한 시간이 없어요. 대통령이 최고 책임자이니까,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시오.
송현 :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지금 한 그 말이 황 조정관 개인 입장으로 하신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과학기술처를 대표하는 공식 발언이십니까?
황해룡 : 누가 농담하는 줄 알아요?
송현 : 그렇다면 과학기술처의 공식적인 발언이라는 뜻이군요. 그럼, 그 말을 서면으로 적어서 답변하여 주시오.
황해룡 : 서면이라니오?
송현 : 이젠 말씀하신 대로 『그 문제를 대답할 만한 시간도 없고, 또 대답할 만한 가치도 없으니까, 대통령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시오』라고 장관님의 도장을 찍어서 서면으로 대답해 주시오.

저는 이 한심한 공무원과의 대담에서 아무런 결론도 얻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자기의 잘못을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관권으로 억압해서 국민의 정당한 권리를 묵살하려는 이런 공무원을 더 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대담을 유인물로 만들어서 전국에 있는 기계화 전문가들과 언론 기관, 타자 교사, 정부 기관에 보내기 위해, 위와 같은 원고와 이 원고의 검토 의뢰를 부탁하는 공문서를 붙여서 1977년 7월 4일 날짜로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발송하였습니다. 그러나 열흘 안에 과학기술처에서 답장이 없으면, 제 원고에 아무 이상이 없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인쇄해서 전국에 뿌리겠다고 했습니다.

1977년 7월 4일 날짜로 보낸 공문에 대한 답장이 1977년 7월 13일 날짜로 과학기술처 장관으로부터 왔는데, 11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고, 다만 표준판을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서 정했다는 것만 강조한 동문서답의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7월 4일에 보낸 11가지 질문에다, 첫째로 표준판이 합법적으로 정했다고 해도 8년 동안 써본 결과 모순점이 많으니 고치는 것이 당연하지 않느냐?

둘째로 본인이 지난 7월 11일 과학기술처에 출두하여 표준판이 날치기로 정한 것과 허위 보고서를 썼다는 증거를 제시하였는데, 본인의 제시를 인정할 수 없다면, 이를 반증할 자료를 제시하라는 두 가지 질문을 덧붙여서 모두 13가지 질문과,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무책임하게 동문서답식으로 대답하면 그때는 과학기술처를 상대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글자판 통일이 되도록 힘쓸 분 아니라, 무사 안일주의적인 공무원들이 지금까지 저지를 잘못에 대한 규명과 책임도 엄중하게 추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7월 15일 날짜로 보냈습니다.

저와 과학기술처와 공식 대담한 원고 검토의뢰 요청과 13가지 질문에 대한 과학기술처의 답변이 1977년 7월 20일자로 왔는데, 저 원고에 씌어진 내용이 사실과 다르며 검토할 가치가 조금도 없으며 그리고 13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이미 보낸 공문을 참고하라면서 지난번과 똑같은 동문서답식이었습니다. 저는 대담원고의 어디가 어떻게 사실과 다르며, 어떤 이유로 검토 가치가 없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혀 주지 않는 과학기술처의 무성의한 처사에 수긍할 수가 없어서, 원고를 그대로 인쇄하여 글자판 통일을 위한 싸움중간 보고서를 만들어 전국에다 보냈더니, 가장 먼저 언론 기관에서 반응이 왔습니다. 《주간 시민》에서는 특종 기사로 보도를 하고,《신아일보》에서도 보고를 하고, 또 기독교 라디오 방송에서도 고발 프로로 방송이 나갔습니다.

앞으로는 이토록 무성의하고 무책임한 과학기술처와 상대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애써서 글자판이 통일되도록 싸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불경에 나오는 이야기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갖가지 짐승이 사는 어느 산 속에 불이 났습니다. 여러 짐승들이 불에 타 죽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비둘기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는 날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용케 불길을 빠져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은 날개가 없었습니다. 비둘기는 밖으로 빠져나와 자기는 안전하게 되었지만, 동료들이 타는 것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개울로 가서 날개로 물을 적셔다가 불길 위에 날개를 털었습니다. 또 개울가로 가서 날개를 적셔와서 불길에 털었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의 비둘기가 그렇게 해서 사나운 불길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비둘기는 동료들이 타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기가 너무 안타까와서 지칠 줄도 모르고 그 일을 계속했습니다. 비둘기는 지쳤습니다. 불은 더욱 사나와졌습니다. 그때 이 비둘기의 갸륵한 마음씨가 하늘까지 전해져서 하늘이 감탄하여 비를 내려 주어서 불길이 잡히고, 동물들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싸우는 것은 비둘기의 처절한 노력처럼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릅니다. 설사 제가 목숨을 걸고 싸운다고 하더라도, 저 두꺼운 관권의 벽을 무너뜨릴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국가안보로 봐서 중대한 허점을 안고 있는 잘못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저는 싸움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제가 관여할 바가 아니고 하늘이 정할 일입니다. 다만 저는 싸우는 순간순간의 찬연한 불꽃에 모든 것을 맡기고 싸울 따름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마운 것은 싸우는 중간 보고서를 유인물로 전국에 보냈더니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다느니, 과학의 진리는 반드시 승리하니까 승리하는 그날까지 열심히 싸우라고 전화로, 또는 전보로, 만나서 격려하여 주는 사람들의 수효가 나날이 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싸우는 것은, 혼자서 개울에서 날개를 적셔와서 뿌리는 물방울처럼 너무나 나약해서 도저히 불을 끌 수가 없을지 몰라도, 나의 싸움이 진실하고 지극하면 마침내 비를 부르게 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고, 오늘도 나는 한글 기계 글자판 통일과 한글 전용을 위해서 미친 사람처럼 싸우고 있습니다.(1977. 9《뿌리깊은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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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현과 과학기술처와 글자판 싸움(2탄)
--아직 안 끝난 관리와의 내 싸움


송현(시인.한글기계화추진회장)


나는 1977년 2월에 전 대통령 박정희씨에게 한글 타자기 기본 글자판을 비과학적인 4벌식을 폐지하고, 과학적인 3벌식으로 통일해 달라는 건의서를 보냈다. 나는 이 건의서에서 과학기술처를 신랄히 비판 하였다. 이 때문에 그해 7월 11일에 과학기술처 장관에게 불려가서 공포 분위기 속에서 그곳 사람들과 세 시간 동안 공식 대담을 하였는데, 그 대담은 누가 보아도 내가 이긴 대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가 월간 잡지《뿌리깊은 나무》1977년 9월호에 발표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성원과 격려를 받은 바 있다. 이 싸움에 대해서 한글 타자기 발명가 공병우 박사는 다음과 같이 평을 하였다.

"송현씨가 천직으로 일하던 교단을 떠나서 우리 타자계로 투신하여 일하면서 그분이 이룩한 가장 큰 공적은 1977년 과학기술처와 했던 공식 대담입니다. 이 대담이 타자기 8년 전쟁에 있어서 중대한 교두보를 확보한 것입니다. 송현씨가 갖은 위협을 무릅쓰고 진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용감하게 싸웠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토록 서슬이 시퍼렇던 과학기술처가 꼼짝 못하게 되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송현씨는 벌써 고발이 되어서 매도 맞고, 감옥에 붙들려 갔을 것입니다. 제가 몇 해 전에 《표준판을 지지하는 자는 국가와 민족을 해치는 자》라는 글을 발표하였다가 모 기관에 고발을 당하여 곤욕을 치른 일까지 있었는데, 송현씨가 싸우는 것은 과감하기로 하면 그때 내가 쓰던 것에 비하면 유가 아닙니다■. 송현씨와 같은 젊은 사람들이 과학의 진리를 입증하기 위하여 생명을 내걸고 싸울 각오로 하고 용감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정보부에서 온 사람

《뿌리깊은 나무》에 내가 쓴 글 〈어느 관리와의 다툼〉이 발표된 지 며칠 뒤에 난데없이 중앙정보부에서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내가 과학기술처와 싸운 이야기를 유인물로 만들어서 전국에 뿌렸는데, 그중에 중앙정보부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이 되어 있었다. 전화의 요지는 중앙정보부가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주는 내가 쓴 글에 대해서 상부에서 대단히 노하였다면서 그 때문에 나를 만나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글에 대한 책임을 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를 중앙정보부로 오라고 하면 내가 가겠고, 당신이 내 사무실로 찾아오겠다면 와도 좋다』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그는 공병우 박사와 나를 같이 만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뜻을 공 박사에게 전했더니, 공 박사는 그런 사람을 만날 하등의 필요도 없고 또 바쁘다면서 한마디로 거절을 하였다. 이 사실을 그에게 통지했더니, 그는 공 박사와 나를 한꺼번에 만나야 한다면서 공 박사를 만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청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며칠 뒤에 다시 공 박사에게 전화를 하여서 그에게 시간을 좀 내어 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더니, 그제야 공 박사는 승낙을 하여 주었다.. 만날 장소는 삼청동에 있는 공 박사의 연구실로 하였다. 그와 나는 중앙정보부의 검정 승용차를 타고 공 박사의 연구실로 갔다.

그는 대충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송 선생이 써서 배포한 유인물에 실린 글은 중앙정보부가 선거에 개입했다는 인상을 강력하게 주었다. 그래서 상부에서 대단히 노하였다. 중아정보부 이야기를 유인물에 쓴 저의가 무엇이냐? 중앙정보부의 명예를 훼손하였다.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유인물을 몇 부나 인쇄하였으며, 몇 부나 배포하였는가, 그리고 그것을 회수할 수 없는가? 회수하는 데에 협조해 다오. 앞으로는 중앙정보부 이야기는 하지 말아라. 이번은 경고하는 것이다. 만약 다시 이런 일이 있으면 그때는 매우 난처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협조해 다오.』

그때에 주로 내가 그의 질문에 답변을 하였는데,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로 답변을 하였다.
『중앙정보부가 선거에 개입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처가 표준 자판을 비과학적으로 제정한 것과 그것을 그들이 시인하고 또 고치겠다고 한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별다른 저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이 중앙정보부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글 쓴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겠다. 그리고 유인물을 한 삼천 부 남짓 인쇄를 하였으며, 이미 거의 다 배포하였다. 그래서 사실상 회수가 불가능하다■.』

그는 우리와 이야기하는 동안에, 우리의 처지를 우호적으로 이해하고는 그도 과학기술처의 한심한 글자판 정책을 개탄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의 설명을 다 듣고는 우리가 싸우는 것이 한글 기계화의 발전, 나아가 이 나라 과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휼륭한 싸움이라면서, 그이도 우리의 주장을 상부에 자기 나름으로 보고를 하여 우리의 싸움을 돕고 싶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주장의 요지와 과학기술처의 잘못한 점과 표준판 타자기의 비과학성을 간략하게 적어 달라고 하는게 아니가! 그래서 나는 며칠 뒤에 그가 요구하는 대로 간략한 유인물을 만들어 주었다. 마침내 그도 우리편이 되어 돌아갔다고나 할까! 나는 그동안에 관리와 싸움을 하면서도 이 땅의 관리들이 모조리 썩은 것이 아니라 개중에는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찾아온 국회의원

그해 겨울 어느날 신사 한 분이 내 연구소로 나를 찾아왔다.
『제가 송현입니다.』
『저는 정대철입니다.』
『혹시, 종로 중구 출신 국회의원 정대철 의원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반갑습니다. 무슨 일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송 선생님께서 한글 기계화를 위해서 고군분투하고 계신다기에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나 하고 왔습니다.』
나는 순간에 우리나라에도 이런 국회의원이 다 있구나 하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를 돕기 위해서 오셨다니, 그 호의는 매우 고맙습니다만, 사실을 알고 보면, 정의원님께서 저를 돕는게 아니라, 제가 정 의원님을 돕게 될 것입니다.』
『?』
『저는 국어 선생 노릇을 하던 사람이며, 또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지금 제가 하고 있는 한글 기계화 글자판 싸움은, 그것이 정책적으로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정책과의 싸움입니다. 정책이 잘못된 것을 바로 고치는 일은 정치가가 할 일이지, 제가 할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글자판 싸움은 바로 정 의원님께서 하셔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며칠 뒤에 다시 만나서, 긴 시간을 마련해서, 한글 기계화 전반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정 의원과 다시 만나기로 한 날에 나는 여러 가지 자료를 챙겨서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으로 갔다. 그는 비서 두 명을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두 시간 반쯤에 걸쳐서 한글 기계화 전반에 관한 설명을 하였다. 한글 기계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글자판인데, 과학기술처가 비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삼 개월 만에 졸속으로 허위 보고서를 써서 국무위원과 대통령을 속이고 만든 비과학적인 것을 표준판으로 정해서, 관권으로 강행하고 있는 기막힌 현실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런데 정 의원은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웬만큼 알고 있었다. 나의 설명을 다 듣고 난 뒤에 정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햇병아리 국회의원입니다. 저의 정치 생명을 걸고 저도 한글 기계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싸우겠습니다.』
나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정말 막강한 원군을 한 사람 만났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현역 국회의원의 이토록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에 나는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서 몇 가지 원칙적인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국회의원 회관을 돌아나오는 나의 발걸음은 그날따라 유난히 가벼웠고, 이 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한없는 기대가 부풀어 올랐다.

그때에 정대철 의원은 민주주의연구소 소장직을 맡고 있었는데, 민주주의연구소 주최로 〈한글 기계화 글자판 통일〉을 주제로 한 세미나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한글학회 강당을 빌어서 세미나를 개최하였는데, 주제 발표는 주요한 박사와 내가 하였다.

이렇게 하여, 다시금 글자판 통일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그리고 제98회 정기 국회에서 신민당의 고홍문 의원이 글자판 통일 문제에 대해서 정책 질의를 하였다. 그러자 최형섭 과학기술처 장관이 거짓말로 답변을 하였다. 장관은 참가하지 않은 한글학자가 참가한 양, 글자판 전문가가 참여한 양 거짓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구회의 속기록을 입수하여 《주간 시민》 1978년 1월 30일자에 〈장관이 거짓말하는 세상〉이란 칼럼으로 장관을 공격하였다.
그 글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장관이 거짓말을 하는 세상이라면, 무엇이 잘못 되어도 크게 잘못 된 세상이다. 장관도 사람이고 보니 거짓말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문제는 거짓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적절하게 지느냐에 있다. 가령 초등학교 학생이 거짓말을 한다면, 타이르거나 벌로 청소를 시키거나 종아리를 때리거나 적당한 벌을 줄 수 있다. 장관이 거짓말을 하였을 때도, 이와 마찬가지로 그 거짓말에 알맞은 책임이나 벌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말을 예사로 할 것이다■.

이 칼럼을 읽은 서 아무개씨가 날 보고 『장관을 갖고 놀 듯이 썼더군!』한 것을 보면, 그때 나도 어지간히 간이 컸었나 보다. 아니 유신체제의 서슬이 시퍼럴 때에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간이 커서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글기계화촉진회(회장은 주요한 박사이고 내가 부회장이었는데, 실무는 거의 내가 도맡아서 했다)가 주최자가 되고 정대철 의원이 소개 의원이 되어서 글자판 통일을 국회에 정식으로 청원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과 같은 단체의 대표들에게서 서명을 받았다. 한글기계화촉진회 대표 주요한, 민족문화협회 대표 이은상, 공병우 한글타자기연구회 대표 공병우, 문장용타자기연구회 대표 송현, 한글전용국민실천회 대표 전택부, 《뿌리 깊은 나무》 대표 한창기, 배달문화연구원 대표 안호상, 한국통신학회 대표 조정현, 한글문화협회 대표 주영하, 대한삼락회 대표 원홍균, 한국국어교육학회 대표 김성배, 한국국제문화교류기구 대표 한갑수, 국어 문화운동 전국연합회 대표 고황경 등이었다. 그것을 정대철 의원에게 주었더니, 정 의원은 1978년 3월 6일자로 국회에 정식으로 제출하였는데 이것이 그해의 청원 1호가 되었다.

행정재판에서도 졌다.

나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민간에서 제정한 민간 통일판을 공업진흥청에다 KS, 곧 한국 공업규격 제정 신청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자판 통일을 위해서 싸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글기계화촉진회 대표 주요한, 민족문화협회 대표 이은상, 배달문화연구원 대표 안호상, 한글전용국민실천회 대표 전택부, 문장용타자기연구회 대표로 있던 나를 포함한 13개 문화 단체의 대표들이 연명으로, 한 해 전에 민간 단체에서 정한 민간 통일 글자판(한글과 영문을 같이 칠 수 있는 매우 과학적인 글자판이었다)의 한국 공업 규격 제정을 1978년 11월에 공업진흥청에다 신청을 하였다.

결과는 예측한 대로 규격화할 필요가 없다면서 거부를 하는 것이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혼란을 막기 위해서 글자판을 「JIS」화 한 지가 이미 오래이다. 한국도 마땅히 글자판 혼란이 더 깊어지기 전에 규격화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공업진흥청에서는 규격화할 필요가 없다면서 거부를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좀더 강력하게 싸우는 방법으로 상공부 장관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 일을 추진하였다.

1979년 1월에 주요한씨가 회장이고 내가 부회장으로 있던 한글기계화촉진회가 원고가 되고, 상공부 장관이 피고가 되는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조영황 변호사를 원고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하였다.국가 상대의 행정소송에서 이긴다는 것은 대단히 힘이 든다는 것은 상식으로 알았지만, 이 소송의 목적은 이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이 문제를 일반에 환기시키고 또 글자판 투쟁을 위해서 민간에서 이토록 처절하게 싸웠구나 하는 기록이라도 남겨 놓는 것이 후손들에게 덜 부끄럽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재판이 진행될 때마다 나는 여러 자료들을 찾고 만들어서 조 변호사에게 주었다. 나중에 재판이 무르익어갈 때에 원고 쪽의 증인으로 내가 자진해서 나가게 되었다.
통금 위반도 한번 해 본 적이 없는 내가 난생 처음으로 법정에서 증인으로 서게 되었는데, 참으로 기분이 묘했다. 한편으로는 떨리기도 하였다. 내가 법정에서 증언할 것은, 과학기술처가 비전문가들을 동원해서 엉터리 표준판을 날기기로 만들었다는 것과, 과학기술처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하여 국무위원과 대통령을 속였다는 사실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나는 법정의 증언대에 섰다. 거짓 증언을 할 경우에는 어떤 벌을 받아도 좋다는 맹세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 쪽 변호인의 질문에 따라서 나는 아무런 주저도 없이 당당하게 과학기술처의 부당한 처사와 거짓들을 25가지쯤의 항목으로 나누어서 증언하였다. 그때에 그런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런데 그때에 재판정의 판사 한 사람의 태도를 보고 이 나라 법조계도 한심한 구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그 판사는 나에게 반말을 찍찍 내지르는 것이었다. 그는 조상 때부터의 더러운 관료 근성이 몸에 밴 탓인지 몰라도 내 생각에는 좀 덜 영글었다고 볼 수 있는 인격자였다.

그런데 행정재판에서도 졌다. 행정재판에서 이길 것을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뒷맛이 씁쓸했다. 옳은 것이 법정에서도 이길 수 없는 세상■■법은 마지막 보루이다■■마지막 보루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지만, 못나도 내 부모는 내 부모인 것처럼, 그래로 내 조국은 내 조국이란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과학기술원의 공청회

그해 10월 26일에 궁정동에서 총소리가 울렸다. 유신체제의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죽던 날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탓에 과학 정책이 엉망이었고, 내 경우로 봐서는 재판까지 엉망이었고, 뭐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드물다던 시절이었다.

그해 겨울에 공병우타자기주식회사가 설립되었고 팔자에 없는 초대 사장이 되었다. 그동안에 관리들과 정면으로 맞붙어서 싸웠는데, 아무리 싸워도 글자판 통일이 되질 않으니, 차라리 그 정열을 가지고 보급을 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보급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로 마음먹고, 그 노릇을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에 내가 관청과 싸워 온 전력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관청과의 싸움은 불가피할 것이라 생각되어서 가장 먼저 관할 세무서를 찾아갔다. 그때엔 누가 밉다고 하면 들이닥쳐 한다고 알려진 것이 세무 사찰이었는데, 내가 만약 법인 회사를 운영하면서 세금 문제로 트집을 잡힐 만한 어떤 일도, 또 법을 어기는 어떤 일도 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관할 세무서의 법인세과에 가서 우리 담당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그분에게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고, 우리 회사의 경리 장부를 정리하여 줄 고문 세무사 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자 그는 고개를 꺄우뚱하였다. 나의 취지를 설명하자, 그는 좋은 세무사 한 사람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 뒤에 그가 소개해 주는 세무사에게 회사의 경리 장부를 맡겼고, 그러자 관할 세무서에서도 나를 믿어 주었다.

1980년 10월에 국회가 해산되었다. 그러자 정대철 의원이 소개 의원이 되어 청원한 한글 기계화 글자판 통일 문제도 자동적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나는 타자기 회사의 사장이 되는 바람에 온갖 정열을 회사의 운영에 쏟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타자기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애를 쓰고, 더 많은 고객들에게 과학적인 3벌식 타자기를 팔기 위해서 영업주 직원들의 교육, 고객관리, 점포망 확장, 심지어 광고 공부까지 할 정도로 타자기 보급에 갖은 열성을 다 쏟았다.

1981년 어느날 한국화학기술원에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용건은 컴퓨터의 표준 글자판을 만드는데, 과학기술처로부터 용역사업으로 자기들이 맡았다는 것이었다. 연구팀의 대표는 성기수, 이기식 박사였고, 수석 연구원은 정왕호씨였다. 이 팀이 그 중요한 과업을 맡은 것이라며 날보고 협조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협조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그들이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들은 글자판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글자판에 대해서는 극히 상식적인 것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자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과거에 과학기술처가 비전문가들을 동원하여 엉터리 글자판을 표준판이라고 만들었던 전후 사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자료의 실물들을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이번에야말로 과학적인 글자판을 정해서 컴퓨터 표준판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1981년 10월 6일에 한국화각기술원 제 4회의실에서 〈한글 컴퓨터 코오드 및 자판 표준화 관계 전문가 토론회〉가 있다면서 자판 분야의 전문가로 주제 발표를 해 달라는 공식 초청을 받았다. 나는 쾌히 승낙했다. 그런데 이날 내가 나가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그 중요한 자리에 주제 발표자로 논문은커녕 하다 못해 유인물 한 장 내놓지 않고, 시종일관 입으로 때우는 한심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과 주제발표자 인선에서 공정성을 잃었다는 점이다. 코오드 분야에서는 2벌식 주장자가 3벌식 주장자보다 곱절이나 더 많았고, 자판 분야에서는 2벌식 주장자가 3벌식 주장자보가 네 곱절이나 더 많았다. 그리고 한가지 짙은 의혹을 풍기는 일은 2벌식 타자기를 발명했다는 이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였다는 점이다. 이해가 걸린 장본인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한 것에 대한 의혹은 언젠가는 백일하에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이날 주제 발표를 통해서 한글은 글자 자체가 초성과 중성과 종성의 3벌식이기 때문에 글자판도 3벌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는 종전의 주장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왔다.

그 뒤로 1981년 12월 22일 오후 1시 30분에 한국과학기술원 회의실에서 공청회가 있었다. 나는 이날 공청회에 가서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두 해 전에 과학기술처가 정한 바 있는 엉터리 2벌식 글자판을 그대로 지지한 글자판을 컴퓨터 표준 자판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가. 삼천만 원의 용역비를 받은 성기수, 이기식 팀은 과학적인 글자판을 연구하겠다고 나와도 약속까지 해 놓고, 이제 와서 연구는커녕 열두 해 전에 과학기술처에서 정한 그 엉터리를 그대로 지지한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참 기가 막히는 노릇이었다.

나는 그날 공청회에서 연구팀이 제시한 글자판이 얼마나 비과학적인가를 정부 공식 문서를 들이대면서 비판하고 엉터리임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성기수, 이기식 팀은 그 엉터리 글자판을 그대로 과학기술처에 넘겨 주었고, 과학기술처는 그 엉터리 글자판을 한국 공업 규격 곧 KS로 정해줄 것을 의뢰하였다. 그러자 공업진흥청에서도 그 엉터리 글자판을 조금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KS5715로 1982년 6월 17일자로 확정하고 말았다. 나는 공업진흥청에서 글자판 심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 잘못할까 걱정이 되어 참관을 하기 위해서 갔었는데, 입장을 시켜 주지 않아서 문전 거절을 당하고 되돌아 와야 했다.

이렇게 해서 엉터리 2벌식 글자판이 이 나라 컴퓨터의 표준 자판이 된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1972년의 행정개혁위원회의 비밀 보고서에는 정부 통신 분야에서만이라도 2벌식을 쓰지 않고 3벌식을 쓰면 운영 경비가 123,378,000원이 절감된다고 나타나 있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과 기계 보급률을 계산하면 이 액수는 더 엄청나다.

공업진흥청이 그 KS 확정을 짓기 전에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비록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엉터리로 정한 것이라고 해도 공업진흥청에서 제대로 검토를 하기만 하면 승인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공업진흥청에서 글자판 심의를 할 때에 참고가 될 이론서가 있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나는 《한글 기계화 운동》이란 제목의 450쪽이 넘는 책의 출간을 서둘렀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책이 11월 중순에야 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위에 알았거니와 그 책이 나왔을 때는 공업진흥청에서 이미 다섯 달이나 전에 KS로 확정한 뒤였었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한 말

나는 졸저 《한글 기계화 운동》을 전두환 대통령에게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나는 대충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동봉하여, 1982년 12월 말일에 등기로 부쳤다. 그러면 1983년 새해아침에 도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는 한글 기계화를 십 몇 년간 연구한 사람입니다. 저의 연구에 의하면, 한글 기계화 정책의 잘못으로 한글 기계화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궁지에 빠져 있습니다. 관계관에게 졸저를 검토하게 하셔서, 만약 저의 지적이 사실이라면, 하루빨리 한글 기계화 정책을 바로 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1983년 1월 하순쯤에 청와대에서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나를 청와대민정담당 비서실로 들어오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청와대로 들어갔다. 나는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했다. 청와대에서 나를 찾는 것을 보니, 이제 글자판 통일도 눈앞에 다가왔구나 하는 기대를 하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나는 인사를 나눈 뒤에 나를 부른 비서관에게 웃으며
『사실, 실수일 것이라고 짐작됩니다만, 저를 들어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비서관님께서 제 사무실로 찾아오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은 김 비서관님 같은 분이 먼저 아시고 저에게 와서 「한글 기계화 정책이 대단히 잘못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바로 잡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도 웃으면서 나의 말이 옳다고 했다.
그 바람에 두 번짼가는 그분이 나에게 점심 대접을 하겠다고 해서 신촌 어딘가에 가서 나는 대접을 받았다.
그분은 대단히 진지했고, 또 우호적이었다. 그분은 내가 쓴 《한글 기계화 운동》을 밤을 새워서 다 읽고는 과학기술처의 담당 공무원의 한심한 처사에 공분을 느껴 이튿날 아침에 당장 과학기술처의 담당관 황해룡이란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았더니, 그는 이미 한해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렸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나는 그 뒤로 여러 차례 청와대를 드나들면서 한글 기계화 정책의 잘못과 올바른 방향 같은 것에 대해서 조언과 자문을 해 주었다. 나는 한글 기계화의 잘못을 바로 잡는 길은 청와대에서 직접 지시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말했다. 그동안에 수없이 많이 건의하고 청원하고 진정하였지만 모두 무책임한 공문서 한 장으로 묵살당한 것을 설명하고, 이런 한심한 풍토를 개탄하였다. 그러니까 길은 청와대에서 지시하는 것뿐이라고까지 말했다.

그러자 그 비서관은 윗분에게 진상을 보고하여서 올바로 잡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동안에 나의 젊음을 다 바쳐서 투쟁해 온 글자판 통일이 이제 눈앞에 다가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없이 기뻤다. 그래서 미국에 있는 공 박사에게도 「살아 생전에 글자판 통일이 되는 것을 보실 수 있게 되었다」고 편지를 하였다. 공박사도 기뻐하였다.

그해 8월 26일에 국무총리 지시 21호가 발표되었는데, 이는 지금까지 말썽 많았던 4벌식 표준 자판을 폐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폐지한 4벌식보다도 더 엉터리인 2벌식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을 보고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동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청와대로 곧장 달려가 민정 비서실로 가서 항의하였다.
『아니,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하십니까! 이것이야말로 개악입니다, 개악. 엉터리 4벌식을 폐지한 것은 잘한 것이지만, 그 대안이란 것이 더 엉터리인데 어쩌자고 이렇게 하십니까!』
나는 흥분하여 내 말에 토를 다는 사람이 있다면 한대 칠 듯한 인상을 줄 정도였다.
『저희들도 올바로 하라고 지시한 것입니다. 관계 부처에서 그렇게 한 것인데, 송 선생님 주장과는 다르지만, 좌우간 비과학적이라던 4벌식을 폐지한 것은 틀림없으니까, 송 선생님의 목적이 절반은 달성된 것이 아닙니까.』
『절반이 아닙니다. 더 엉터리로 했으니까, 이제 한글 기계화는 영영 망치게 되었습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지시하여 바로잡도록 할 수 없습니까?』
『저로서도 그 동안에 최선을 다하여 윗분에게 보고드려서 일이 이렇게 결정되었는데, 제 개인적인 힘으로는 더는 이 문제를 거론하기가 좀 난처합니다.』
『저는 도저히 이 엄청난 잘못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우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한심한 작태들을 글로 써서 유인물을 만들어서 국민에게 알리고 언론에다 호소할 생각입니다.』
나는 씁쓸한 기분이 되어서 청와대를 나왔다. 관계 부처라는 데에서 이 나라의 과학 정책을 이 모양 이 꼴로 다루는 것을 보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그동안 청와대에서는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최선을 다한 것이 틀림없었기에, 나는 그 비서관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서관님, 저는 비서관님을 아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돌아가서 국무총리나 과학기술처를 공격할 예정입니다. 그러나 청와대는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겠습니다.』
우리는 씁쓸하게 웃으며 헤어졌다.

나는 청와대에서 돌아와서 몇 밤을 새워서〈선진 조국 창조에 역행하는 한글 기계화 정책〉이란 40쪽짜리 유인물을 만들었다. 나는 이 유인물을 「종이폭탄」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우리가 저 무시무시한 관권과 싸우는 데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수많은 유인물을 내보냈고, 또 앞으로도 내보낼 생각이다.

차라리 미국으로 갈까?

나는 그동안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하도 많은 사람들과 본의아니게 싸움을 많이 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나를 그저 싸움꾼으로 아는 분들도 있었다. 나는 싸우는 틈틈이 한글 기계화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또 한글 기계화에 대한 이론적인 정립을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어서, 국내에서 처음으로 《한글 기계화 개론》이란 책을 출간하였다. 나는 이 책에서 한글 기계화는 한국학의 새로운 줄기임을 밝혔고, 한글 기계화에 대한 인문 과학적인 접근을 통한 이론서를 만든 셈이다. 이 책은 도서출판 청산에 의해서 1984년 1월에 출간되었다.

이 무렵에 한국기계연구소의 표준 부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나에게 전화가 왔다. 한글 타자기 글자판을 연구하는 주제를 자기네들이 맡게 될 듯한데 나에게 자문을 받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글자판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 과업인가와 지금까지 실패한 원인들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잡아야 할 추진 방향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며칠 뒤에 다시 연락이 왔다. 그 작업에 몸소 참여해서 도와 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글자판 통일을 위한 일이라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다만 지금까지 과학기술처가 한 작업들을 완전히 백지화하고, 진실로 과학적인 글자판을 만들겠다고 해야 합니다.』

그랬더니, 그는 난색을 표하면서, 날더러 조금 양보할 수 없겠느냐고 했다. 그가 말하는 양보는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과학기술처의 기본안을 지지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기술처의 기본 안과 또 다른 새로운 안과 두 개를 만드는 경우였다. 나는 두 가지 다 찬성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서 과학기술처의 엉터리 글자판과 싸워 왔는데, 이제 와서 그런 엉터리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처음에 연구비와 사무실, 연구원 문제까지 꺼내면서 나의 협조를 구했는데, 내가 끝까지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와의 대화는 결렬되고 말았다.

글자판이 과학적으로 통일이 될 듯하다는 나의 편지를 받고 한동안 기대를 하고 있던 공병우 박사는 국내의 돌아가는 꽃들을 보고, 또 다시 크게 실망을 하고는 나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은 그동안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누구보다 용기있게 또 훌륭하게 싸워왔다. 당신이 자판 통일을 위해서 한 일들은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관계 당국에서 하는 것으로 보아서 글자판 통일은 요원하다. 그러나 당신이 이제 자판 통일을 위해서 더 노력해도 자판 통일이 될 가망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이제 무지한 관리들과 싸움은 그만하고 앞으로 당신이 더 큰일을 할 수 있기 위해서 미국에 와서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하기를 원한다. 당신을 내가 미국에 초청하고 싶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다 바쳐서 일해 온 글자판 통일 과업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 이를 이대로 방치해 놓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 가는 문제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자 공병우 박사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또 보내 왔다.

"나는 이제 고목과 같은 몸입니다. 바람이 불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고목입니다. 바람이 불지 않더라도 자고 나면 쓰러질지도 모르는 고목입니다. 나의 건강은 날로 쇠퇴해지고 나의 경제적인 형편도 언제까지나 지탱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당신을 도와 줄  수 있는 여건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하루빨리 미국에 오셔서 컴퓨터 공부를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공 박사의 편지는 간곡했고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인 줄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의 글자판이 혼란한 사정을 이대로 두고는 도저히 갈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 무렵에 나는 청와대로 갔다. 공 박사의 편지를 보여 주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으로는 지금 미국으로 가서 컴퓨터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백번 이익이 큰 줄 안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 글자판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을 알고는 도저히 갈 수가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글자판 정책이 틀렸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이 나말고 또 누가 있느냐. 그러니까 나만 입 닫고 가만히 있으면 이 나라 한글 글자판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궁지에 빠지고 말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 만약에 청와대서 이제라도 이 잘못을 다시 바로잡도록 지시를 한다면 나는 마음놓고 미국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오겠다.』
비서관은 내 말을 듣고는 난색을 표했다. 한번 결정한 일을 이제 다시 자기 혼자 힘으로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는 투였다. 지극히 고마운 이의 말도 그럴 때는 그럴 수밖에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청와대를 나오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서관님, 제가 현재는 미국에 갈 생각이 없지만, 만약에 마음이 변해서 미국에 가더라도 그때까지 이 나라의 글자판 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으면, 나는 아마 미국에서 컴퓨터 공부를 집어치우고 딴 일에 앞장설지도 모릅니다. 그 일은 과학의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비과학적인 것을 강행하는 일부 관료 집단에 정말로 대드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 선거에서도 지고 보니

그 뒤에 한국기계연구소에서는 글자판 비전문가들을 모아서 엉터리 2벌식 글자판을 만들어서 타자기 표준판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국무총리는 이 엉터리 글자판을 1985년 7월 1일부터 정부 기관에서 써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이로써 한글 타자기 자판조차도 종전의 「공병우식과 김동훈식의 단점만 모은 졸작」이라는 4벌식보다 더 비과학적인 2벌식 글자판을 표준판으로 정했으니,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은 이럴 때에 쓰는 말인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길어진 이 사연에 덧붙여 어찌 다 길게 설명할 수 있을까마는, 이 화제에 낯선 분들을 위해 3벌식 자판과 4벌식 자판, 2벌식 자판에 대하여 짤막하게 말하자면 다음과 같다.
2벌식은 자음 1벌과 모음 1벌로 되어 있고, 3벌식은 자음 1벌과 모음 1벌로 받침 1벌로 되어 있고, 4벌식은 자음 1벌과 모음 2벌과 받침 1벌로 되어 있다.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한 번 찍는 것을 달리기 경주와 견주어 설명해 보자. 4벌식 선수는 잠깐 멈추기를 106번 해야 하고, 2벌식 선수는 186번을, 3벌식 선수는 고작 6번만 하면 된다. 3벌식 선수가 1등을 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잠깐식 멈추어야 하는 까닭은 4벌식은 윗글자쇠를 106번 눌러야 하고, 2벌식은 받침 예고용 키——윗글자쇠——를 186번 눌러야 하고, 3벌식은 윗글자쇠를 6번을 눌러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국민교육헌장 한 번 찍는데도 4벌식은 3벌식보다 자그마치 17곱절, 2벌식은 자그마치 31곱절이나 더 많이 윗글자쇠를 눌러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글을 쓸 때에 48퍼센트쯤은 받침이 있는 글씨를 쓰게 된다. 쉽게 말해서 보통 두 자 중에서 한 자는 받침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2벌식은 두 글자마다 한 번씩 받침 때문에 쓸데없이 받침 예고용 키를 눌러야 한다는 뜻이다. 온 국민이 써야 할, 그리고 우리 후손이 두고두고 영원히 써야 할 한글 기계의 기본 글자판을 이런 엉터리로 정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 이런 엉터리 한글 기계 글자판 정책은 이 나라 과학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발전을 가로막자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엉터리 정책을 세우는 관리들은 이른바 선진 조국 창조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일을 해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담당 관리들이 지금도 스스로 표준판으로 정한 2벌식 글자판이 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실험으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과학의 문제를 관권으로 강행하는 것은 지탄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나는 그동안에 한글 워드 프로세서를 연구하였다. 내가 연구한 것은 한글학회에서 첫선을 보인 뒤로 1984년 10월 9일 한글날에 KBS 텔레비전을 통해서 전국에 선을 보였다. 그 뒤로 나는 연구 작업을 계속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수정을 하여 많이 개량을 하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글자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여 1985년 10월 9일에는 《한글 자형학》이란 저서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한글의 글자꼴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운 것으로 실로 외람되나마 오백년 만에 내가 처음으로 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뜻밖에 지난 12대 총선의 선거판에 뛰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치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내가 지난 선거 때 종로ㆍ중구의 극장이라는 극장은 다 돌아다니면서 정대철 후보의 지지 연설을 하였다. 그것은 글자판 통일의 길은 이제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이 바로 잡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러자니, 내가 뒤늦게 정치 지망생으로 뛸 수는 없고, 또 그럴 위인도 못되니, 이미 8년 전에 「정치 생명을 걸로 싸우겠다」고 약속한 그가 다시 국회로 들어가서 그 약속을 지키기를 바라는 뜻에서 나는 지난 선거에서 정대철 후보의 지지 연설을 하였고, 그의 참모의 한 사람으로 내딴에는 열심히 일한 것이다.

그때 나의 아내는 그동안에 과학기술처와 싸운 것도 간이 조마조마한데, 이제 선거판에까지 뛰어들어서 그것도 야당의 찬조 연설을 할 정도까지 깊게 관여하겠다니, 이제 살림 다 살았다면서 탄식을 하면서 만류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거판에 발가벗고 뛰어들고 말았다. 그런데, 이 무슨 시련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찰떡같이 믿었던 정대철 후보가 낙선하는 바람에 나의 꿈은 또 무너진 셈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글자판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왜냐하면 과학의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믿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고, 지금까지 싸워 온 경험으로 이제는 이 믿음은 거의 신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과학의 진리가 승리하는 그날까지 나의 싸움은 계속 될 것이다.  (1985. 12《샘이 깊은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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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현 원장 지여처다 인물정보(2009년판)  

 사무국
2006/01/20 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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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 현 원장 자료실 안내 ※  

 사무국
2006/01/13 4929
43
 현행 표준자판을 폐지해야 할 10가지 이유(필독)  

 사무국
2008/05/03 6079
42
 정보사회외 예술의 위상(자료)  

 사무국
2008/05/03 3734
41
 정보 전쟁 시대의 한글과 우리말  

 사무국
2008/05/03 3073
40
 김일성 주석님께 드리는 공개편지(자료)  

 사무국
2008/05/03 3236
39
 {소식} 송현 선생 SS이론 일본 언론에 보도--일본 골프다이제스트 11월 27일자  

 송 현
2008/01/03 3445
38
 월간 중앙 2003년 7월호 인터뷰 자료  

 송 현
2007/11/08 2486
37
 어느 관리와 다툼--한글기계화 글자판 투쟁에 관한 희귀 자료 공개  

 송 현
2007/06/08 3153
36
 한글 글자꼴 판독성 검사 방법 연구  

 송 현
2007/02/08 6012
35
 경솔한 학자들 때문에 한글 전용이 늦어지고 있다--고대 김 민수 교수 글 비판  

 송 현
2006/12/29 4636
34
 외솔 최현배 박사를 욕되게 하는 외솔타자자기--고대 최동식 박사 글 비판  

 송 현
2006/12/29 5426
33
 꿈 속에 잠긴 한글학회  

 송 현
2006/12/29 4030
32
 주 박사님의 송현선생에게 대답한다에 대한 반론  

 송 현
2006/12/29 4358
31
 풀어 쓰자는 주장을 반박한다--주요한 박사 글 비판  

 송 현
2006/12/29 4028
30
 잠꼬대 같은 소리를 하는 학자들--고대 김정흠 교수글 비판  

 송 현
2006/12/29 3487
29
 KAIST에는 왼손잡이들만 있는가?  

 송 현
2006/12/29 3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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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를 규탄한다--중앙일보 비판  

 송 현
2006/12/29 3446

 과학기술처와 글자판 투쟁 이야기 (1. 2)  

 송 현
2006/12/02 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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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명패에 제 이름을 한글로 쓰지 않고 한문자로 쓰는 얼빠진 국회의원 놈들 명단  

 송 현
2006/02/22 4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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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관순 말과 이 완용 말의 차이  

 송 현
2006/02/22 4088
24
 뚱단지 예찬론  

 송 현
2006/02/22 4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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