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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7 01:04:18
송 현
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9)--그리운 어머니의 회초리
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9)



그리운 어머니의 회초리


송현(시인.칼럼니스트)


내가 부산 명지초등학교 2학년 땐지 3학년 땐지 기억이 아름아름한데, 통지표를 받는 날이었다. “수”가 몇 개 되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았다. 집에 오니, 어른들은 다  밭에 일 나가고 아무도 없었다. 저녁 때면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와서 통지표 보자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에 배고픈 줄도 몰랐다.

마루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아 이 궁리, 저 궁리하던 끝에 드디어 나는 통지표를 고치기로 작정하였다. 통지표를 고쳐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부터 가슴이 콩콩 뛰었다. 나는 살금살금 아버지 책상으로 갔다. 아버지 책상은 여닫이 식이었는데, 조심스레 책상을 여니, 잉크와 팬이 있었다. 잉크병 뚜껑을 열었다. 펜에다 잉크를 찍었다. 통지표의 수 칸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몇 갠지 세지도 않고, 계속 그리다가 혹시 너무 많이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동그라미 그리기를 멈추었다. 내 통지표에 갑자기 수가 많아지자 성적이 훨씬 좋아졌다.

나는 잉크병을 닫고, 펜을 붓통에 꽂고, 책상을 닫았다. 이 대목에서 한가지 덧불일 것은 선생님은 붓뚜껑으로 수.우.미.양.가를 찍었는데, 나는 펜에다 잉크를 찍어서 동그라미를 그렸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거기다가 더 바보스런 것은, 선생님이 붓뚜껑으로 찍은 것을 일단 지운 뒤에, 동그라미를 쳐도 쳐야 할 것인데, 붓뚜껑으로 찍은 것을 지우지도 않고, 수 칸에다 동그라미를 내 마음대로 쳤다는 점이다.

저녁 때,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통지표를 받아왔느냐고 물었다. 나는 시침을 뚝 따고, 통지표를 내 밀었다. 어머니는 통지표를 받아서 찬찬히 들여다 보다 말고, 헛간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나는 영문을 몰랐다. 잠시 뒤에 헛간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손에는 회초리가 여러 개 들려 있었다. 나는 앞이 캄캄했다. 다짜고짜로 내 팔을 나꿔채고는 회초리로 사정없이 내 종아리를 때렸다.

“이놈의 손아! 대가리 소똥도 안 벗겨진 놈이 에미를 속여? 글 배워서 훌륭한 사람되라고 학교에 보냈더니,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에미를 속여?”

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렇게 큰 줄 처음 알았고, 그렇게 무서운 어머니의 표정을 처음 보았다. 종아리에 피가 났다. 그래도 어머니는 계속 회초리를 놓지 않았다. 나는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용서를 빌었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놈의 손아, 벌써부터 에미 속이려 드는데, 니 같은 놈을 키우면 뭐 하겠노, 니 죽고 나 죽자!”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보고 있던 할머니가 치마폭으로 나를 감싸며 말했다.

  “어멈아, 대강해라! 귀한 손잔데, 아예 잡을 참가!”

어머니는 나를 개 끌듯이 질질 끌고, 삽잡(대문) 밖으로 쫒아내고, 삽작문을 걸었다. 할머니는 어머니께 몇 번이나 봉변을 당하면서도 삽작 문을 열었지만, 어머니의 노여움이 풀리지 않아, 나를 구출하지 못했다. 나는  그날 저녁을 촐촐 굶고,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모기에 뜯기면서 울다 잠이 들었다.

어머니는 우리 다섯 남매를 키울 때 회초리를 아끼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그 회초리가 그리울 때가 있고, 그 무서운 회초리를 들었던 어머니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없이 많은 선생들을 만났지만, 우리 어머니처럼 무서운 회초리를 드는 선생을 보지 못했고, 우리 어머니처럼 위대한 스승도 보지 못했다.(끝)  www.songhyun.com (2000.10. 5)


(주) 송현 시인의 동시집 "우리 엄마 회초리"가 현재 일본어 번연 중이고, 번역이 끝나면 일본어로 출판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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