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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31
2007-12-07 01:06:35
송 현
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11)--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사장님 기일에 하는 단식
내 생애 감동의 순간들(11)


뿌리깊은 나무 한 사장님 기일에 하는 단식


송현(시인. 한글문화원장)


나는 1년에 나흘 단식을 한다. 네 분의 스승이 돌아가신 날에 단식을 한다. 네 분 중에 한분이 뿌리깊은 나무 한 창기 사장님이다. 내가 1974년에 서라벌 고등학교에서 국어 선생질을 할 때이다. 그 때는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 시절이었는데, 그 살벌한 시절에 한 사장님은 󰡐뿌리 깊은 나무󰡑라는 멋진 월간 잡지를 한글 전용을 하여 창간했다. 당시로서는 대단히 파격적이고, 최첨단 멋쟁이 잡지였다. 이 잡지를 내가 수업 들어가는 교실마다 들고 다니면서 학생들에게 홍보를 하였다.

내가 학교를 그만 두고, 󰡐공병우 한글 기계화 연구소󰡑로 가서 한글 기계화에 대한 연구를 하던 어느 날 한글 기계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서를 보냈다. 두어 달이 지나도 아무 회답이 없어서 박 대통령에게 󰡒민주주의란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이 종이 아닙니까. 제가 건의서를 보냈는데, 기면 기다 아니면 아니다하고 대답을 해야지, 왜 아무 대답이 없습니까! 주인의 건의를 이렇게 무시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까......?!󰡓라는 요지의 항의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청와대에서는 내게 사과하고 내 건의서를 과학 기술처에 넘겨도 좋겠냐고 물어왔다. 그러라고 하자, 얼마 뒤에 과학기술처가 엉터리 답변을 내게 보내 왔다. 그래서 나눈 󰡐한글기계화 글자판 통일󰡑을 위해서 순교(?)할 각오를 하고 과학 기술처장관에게 서면으로 따지고 대들었더니, 장관이 나를 불렀다. 내가 장관에게 불려 가서 공식 대담한 것을 폭로하는 유인물을 3천 부를 만들어 전국에다 우편으로 뿌렸더니, 제일 먼저 󰡐뿌리 깊은 나무󰡑한 사장님에게서 격려 전화가 왔다.

󰡒......이 어려운 시절에 과학의 진리를 위해서 송 선생이 용기 있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격려 전화를 하였습니다. 우리 잡지에 지면을 드릴 테니, 그 유인물에서 못다한 이야기라도 있으면 마음껏 써 보세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것이 아닙니까......󰡓

이 전화가 한 사장님과 최초의 인연이다. 마침내 󰡒뿌리 깊은 나무󰡐에 '어느 관리의 다툼󰡑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하였다. 보잘 것 없는 내 글이 그 권위 있는 잡지에 실리니, 글도 권위가 있어 보였고, 그 반응도 엄청났다. 전국에서 격려전화와 편지가 엄청 많이 왔다. 그 바람에 나는 그 잡지가 얼마나 대단한 잡지인가를 실감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한 사장님은 나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 귀한 잡지의 지면을 주었다. 내가 그 잡지에 글을 발표하고 나면 다른 잡지나 사보에서 원고 청탁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잡지에 글을 한 꼭지 발표 할 때마다 내 원고료도 높아지고, 나도 쑥쑥 자라는 것 같았다.

한 사장님이 내게 베푼 사랑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하루는 아침 일찍 한 사장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시간이 괜찮으면 성북동에 있는 한 사장님 댁으로 잠시 들렸다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영문인가 하고 잔뜩 긴장을 하고 갔다. 2층 안방으로 나를 안내하더니, 옷장의 문을 열고는 이렇게 말하였다.

󰡒여기 있는 내 옷 중에서 송 선생이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다 드리겠습니다.󰡓

그 집 옷장을 안 본 사람은 상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한 사장님의 성북동 집은 그야말로 대저택이다. 그 넓은 2층의 안방에 있는 옷장은 한쪽 벼 이쪽부터 저쪽 끝까지 붙박이로 된 맞춤 옷장이다. 그 큰 옷장에 한 사장님의 양복이 꽉 차 있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그 시절 우리 나라에서 한 가장만큼 깔끔하고 세련된 멋쟁이가 또 누가 있었는가. 그 세련된 눈썰미와 그 까다로운 감각의 국제 신사가 입던 최고급 양복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걸려 있었다.

나는 어릴 때 그렇게 가난하게는 안 살았는데도, 촌놈 근성이 있어 그랬는지, 사양 하는 척도 않고 좋아라고 한 사장 앞에서 올을 덜렁 벗었다. 상의는 와이셔츠, 하의는 팬츠 바람이 되었다. 한 사장님은 이런 나를 물끄러미 보고 빙그레 웃었다. 염치도 없이 나는 왼쪽부터 시작해서 한번 한 벌 꼼꼼이 뒤져가며 색상이 마음에 들고 고급스럽고 좋은 것만 쪽쪽 뽑아서 입어 보고, 그 중에서도 최고급만 골라서 한쪽 옆에 따로 놓았다. 최고급으로 보이는 놈과 최고로 멋져 보이는 옷만 쪽쪽 뽑아서 한 옆에다 따로 놓았으니, 한 사장님이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기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얼마나 얄밉고 한심해 보였을까!

한 사장님은 아랫목에 비스듬히 앉아 내가 입은 옷이 어디가 어떻게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일일이 평가해 주었다. 수십 벌을 입어 보고, 내가 따로 뽑아서 한 옆에 놔 둔 것이 나중에 세어 보니 무려 일곱벌이었다. 한 사장님은 마음 착한 운전기사 광수씨를 불러서 󰡒이 옷을 잘 싸서 송현 선생 사무실로 갔다 주라.󰡓고 시켰다.  

그 옷은 옷이 아니다! 한 사장님의 내게 대한 사랑의 징표이다. 그러니 함부로 입을 수가 없었다. 첫째는 아낀다고 그랬고, 둘째는 그런 고급 옷을 입고 나갈 기회가 잘 없었다. 그래서 입어 보지도 못하고 옷장에 걸어 두었는데, 똥배가 많이 나와 아예 입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옷을 지금도 고대로 말짱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

나는 우리말과 글을 한 사장님만큼 진정으로 사랑하고, 이를 갈고 닦기 위해서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이란 잡지를 통해서 철저하게 실천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요즘 나오는 잡지가 아주 세련되었는데, 이것도 알고 보면 한 사장님이 이미 약 삼십 년 전에 󰡐뿌리 깊은 나무󰡑라는 당대의 최고 세련된 고급 잡지를 만들어서 선을 보였기 때문이다. 잡지의 세련됨뿐 아니라, 잡지를 어떻게 만들며, 필자를 어떻게 예우해야 하며, 문장을 어떻게 써야 하며, 어떤 글을 실어야 하며, 어떤 글은 싣지 말아야 하며,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며, 사진을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길과 마음이 직접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 뒤에 나온 잡지들이 그 잡지의 좋은 점을 흉내내지 않은 잡지가 별로 없지 싶다. 우리말과 글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다. 우리나라 고유한 잎차를 대중적인 상품으로 만든 것도 한 사장이 처음 시도했고, 사라져 가는 우리의 옹기 그릇도 한 사장이 맥이 끊어지지 않게 터전을 닦았고, 우리 종이, 심지어 우리 밥그릇까지, 한반도의 슬픈 소리까지 채록 채보하여, 깔끔하게 손질하고 매끈하게 다듬어서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좋을 번듯한 물건으로 만든 것도 한 사장이다. 이처럼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는데, 내가 모르는 것도 또 얼마나 많을까!

나는 한 사장님만큼 높은 문화적 심미안과 날카로운 비평안을 가진 분을 본 적이 없고, 한 사장님처럼 우리 전통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 사장님만한 미식가를 본 적이 없고, 한 사장님처럼 세련된 감각의 양복과 한복을 멋지게 입는 멋쟁이를 본 덕이 없다. 한 사장님처럼 말을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고, 한 사장님처럼 글을 논리적으로 잘 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한 사장님 정도면 잘못하면 잃을 것이 많았는데도 이땅의 민주화를 앞당기기 위해서 알게 모르게 힘을 많이 썼다. 한 사장님처럼 많은 사람을 키운 이를 본 적이 없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 사장 때문에 큰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괴발개발 써온 글, 문장도 되지 않는 글을 쓰는 대학 교수나 문사들 중에 한 사장 덕 본 사람이 기하이며, 어설픈 예술가 중에 한 가장 적 본 사람은 또 기하이뇨!

예나 지금이나 내가 쓴 글은 거칠고 흠이 많다. 사실 유신 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청와대, 과학 기술처, 체신부 들을 겁도 없이 공격하는 류의 내 글에는 흠도 많았고, 거칠기 짝이 없었다. 그대로는 도대체 물건이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그런데도 󰡐뿌리 깊은 나무󰡑쪽 사람들이 잘 다듬고 조금만 화장을 하면 멀쩡하고 제법 쓸만한 물건이 되곤 했다. 그때는 바른 말 하는 글을 잡지에 싣는다는 것은 발행인이 잡지 문 닫을 각오를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때이다. 거의 항일 독립 운동하는 수준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절이다.

내 혈기 왕성하던 젊은 날에 권력의 상층부를 겁도 없이 비판하는 글들을 한 사장님이 그 좋은 잡지의 지면을 할애해 준 것이다. 그 좋은 무대를 내게 제공해 주지 않았다면 나같이 사교성 부족하고 독선적이고 고집 센 사람은 절대로 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그 동안 글줄 팔아 밥술 먹고,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강의도 하고, 마침내는 교육 전문 케이블 텔레비전의 간판프로인 󰡐케이블 스쿨 가정교육󰡑의 MC까지 몇 년째 할 정도로 성장한 것도 알고 보면 한 사장님 도움이 제일 크지 싶다.

나는 스승이 돌아가신 날 단식을 하면서 배가 고플 때마다 이를 악물고 그분들이 내게 베푼 사랑에 감사하고, 그분들이 내게 베푼 사랑에 감사하고, 그분의 훌륭한 생각과 멋지고 아름다운 삶의 궤적을 반추하면서 내 삶을 점검한다. 스승을 생각하고, 스승과 함께 보낸 아름답고 금쪽같은 날들의 추억과 함께 나눈 소중한 대화를 반추하고, 스승이 쓴 책을 읽고, 스승에게 받은 선물들을 만지작거리면서 영원히 스승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이 날보다 하루를 더 경건하게 보낸 적이 없고, 이날보다 가슴 벅차게 하루를 보낸 적이 없다.

일년 중에 내 몸과 마음이 가장 맑고 경건해지는 면에서는 경축일이고, 스승을 만났던 행운과 스승에게 받은 사랑에 가슴 벅차오르는 면에서는 축제일이고, 은혜의 백분의 일도 갚을 수가 없고, 보고 싶어도 이승에 계시지 않아 볼 수 없어 목이 메이는 면에서는 기일(忌日)이다. 그래서 이날 나는 아무도 모르는 상주(喪主)가 된다.(1999.10.5) www.songhy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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